
저자 초대석
“죽음이 남긴 삶의 상처, 애써 아닌 척”
네 번째 시집 『사과의 잠』 펴낸 김정수 시인
- 본인 소개 부탁합니다.
저는 경기도 안성시 일죽에서 태어났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한 이후 쭉 서울에 살았습니다. 어느새 40년이 넘었네요. 미아동(삼양동)에서 오래 살았습니다. 결혼하고 삼양동 산동네에서 내려왔지요. 그 당시의 삶을 시화(詩化)한 것이 첫 시집 『서랍 속의 사막』입니다. 암울했지만 희망을 잃지는 않았지요. 대학 졸업 후 먹고살기 위해 직장을 전전했고, 시는 삶의 뒤로 밀려나 있었어요. 하여 첫 시집을 14년 만에, 두 번째 시집 『하늘로 가는 혀』를 10년 만에, 다시 세 번째 시집 『홀연, 선잠』을 6년 만에 냈습니다. 요즘은 글 쓰는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네 번째 시집 『사과의 잠』은 3년 만에 낼 수 있었습니다.
- 이번에 낸 네 번째 『사과의 잠』에 대해 간단한 소개를 해주세요.
1990년 《현대시학》으로 문단에 나왔으니, 올해로 등단 33년입니다. 『홀연, 선잠』 ‘시인의 말’에서 10년에 한 권을 낸 셈이라 했지요. 3년 만에 냈으니, 엄청 빠른 편입니다. 이번 시집은 삶보다는 죽음에 천착하고 있습니다. 자아보다 타아의 죽음, 즉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통해 내 삶을 들여다보고 반성한다고나 할까요. 주변의 죽음 내 삶에 상당한 파문을 일으킵니다. 그 파문이 삶에 상처를 냅니다. 애써 아닌 척하는 게 이번 시집에 담겨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가족 안에서 소소한 일상을 통해 행복을 추구하고 있지요. 이 둘이 이율배반적일 수 있지만, 한 공간과 한 사람의 마음에서 공존하며 갈등하고 있지요.
- 시집을 출간하면서 느낀 소회나 동기를 말씀해주세요.
시를 쓰는 것도, 시집을 내는 것도 어렵습니다. 56편의 시 중 미발표작은 6편. 3년 동안 50편을 문예지에 발표한 셈이지요. 과작이었는데, 어느 순간 다작이 되었습니다. 청색종이에서 시집을 본격적으로 내기로 했다면서 저에게 출간 제의를 했습니다. 고마운 마음에 흔쾌히 수락했지요. 1차 원고를 정리했을 때, 마침 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출판콘텐츠’ 지원 마감이 가까웠습니다. 출판사에 떨어지더라도 지원해보자 제안했어요. 한데 운 좋게도 선정되었지요. 출판사에도 민폐를 끼치지 않을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우수출판콘텐츠’에 보낸 제목은 『옆구리를 조심하라고?』였는데, 출판사에 최종 원고를 보낼 때 제가 『사과의 잠』으로 바꿨어요. 출판사에서도 『사과의 잠』이 좋다고 하더군요. 이후 출판사에서 표지디자인 시안 3개를 보내와 가족에게 보여줬더니, 다들 1안이 마음에 든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그랬고요. 그게 이번 표지입니다. 이후는 출판사에서 알아서 해줄 것이라 믿고 기다렸어요. 시집이 마음에 쏙 들 만큼 잘 나왔어요. 좋은 디자인에 맞는 좋은 내용인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 김정수 시인에게 이번 시집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이성천 경희대 교수(문학평론가)가 두 번째 시집 해설에서 저에 대해 ‘가족주의자’로 규정했지요. 사실 첫 시집부터 이번 시집까지 원가족(原家族)과 현재의 가족에 대한 시를 많이 썼습니다. 그게 삶이니까요. 이번 시집은 가족의 삶과 죽음에서 급격하게 변하는 환경에서 미래세대의 삶의 존재 방식에 관심을 가지려 했어요. 사실 세 번째 시집 맨 마지막 수록시 ‘잠의 종말’이 네 번째 시집의 방향성을 제시했는데, 그것에 이르지는 못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시집은 AI나 환경오염으로 대표되는 미래사회를 시화하는 중간 단계의 시집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시인이 생각하기에 이번 시집의 대표작은 무엇인가요.
사실 시 한편 한편 애착이 가지 않는 시는 없지요. 이번 시집에서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짧은 시 ‘북쪽’에 들어 있습니다.
지나가는 돌멩이를 집어 들었다가 도로 내려놓았습니다. 그새 생의 온기가 옮겨갔습니다.
이 시의 제목이 왜 북쪽인지, 돌멩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돌멩이는 왜 지나가는지, 그리고 집어 들었던 돌멩이를 왜 도로 내려놓았는지를 생각해보면 될 것 같습니다. 또 돌멩이에 옮겨간 생의 온기는 무엇인지. 짧은 시지만 오래 공을 들여 썼지요.
- 시집을 내면서 겪은 재미난 에피소드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시집 최종 원고를 넘기기 전에 아내와 태국 치앙마이와 치앙라이를 다녀왔습니다. 인천공항에서 해가 지기 바로 전 출발했는데, 서쪽으로 날아가면서 일몰을 보았지요. 하늘과 땅 사이에 거대한 눈이 있었지요. 창가에 앉아 하염없이 바라보았습니다. 갔다 와서 ‘어둠의 속도를 추월할 수 없어 별의 자리를 더듬었습니다. 그새 빛의 경계가 멈추었습니다.’(‘서쪽’ 전문) 짧은 시 한 편을 썼지요. 왓 프라탓 도이수텝 사원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붉은 꽃 떨어진 계단을 흰 개 한 마리가 올라오고 있었지요. 사원과 개 그리고 붉은 꽃이 어우러진 풍경은 ‘환생’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귀국해 ‘서쪽’과 ‘환생’ 2편을 써 추가하고, ‘시인’을 뺐지요. 한데 해설과 잡지 평론에서 ‘시인’을 언급하는 바람에 시집 맨 마지막에 다시 넣었습니다. 사라졌던 시인이 부활한 셈이지요.
-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당장 올 가을호 문예지 청탁 시 8편과 신작 소시집 평을 써야 합니다. 동시도 2편 써야 하고요. 8월에는 시집 해설 2편을 써야 하고요. 저는 전업 작가입니다, 쓰는 게 직업이지요. 제가 계획안 시를 계속 쓰는 것과 그동안 쓴 평을 책으로 내려 합니다. 책 분량은 이미 넘치는데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습니다. 당분간은 『사과의 잠』 시낭독회나 초청강연 등 예정된 행사를 하면서 밀린 원고를 쓰려고 합니다.
- 《뷰티라이프》 독자들께 한마디 해주세요.
25년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 있는 미용 잡지 《뷰티라이프》에 초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내 머리가 아닌 타인의 머리를 아름답게 하는 일은 시를 쓰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미용이 타인의 머리를 표현하면서 나를 수행한다면, 시는 내적 성찰을 표현한 결과물로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지요. 내 밖의 아름다움을 통해 내면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미용은 고귀합니다. 머리를 매만지는 손끝을 통해 타인의 마음이 내게로, 내 마음이 타인에게 흘러가지요. 미용은 손끝의 예술이면서 마음을 나누는 행위입니다. 그런 직업을 가진 분들을 존경합니다. 바쁜 와중에서 시 한 편 읽으셨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고맙습니다.
<뷰티라이프> 2023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