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초대석(고운기 시인)
“시 한 편에서 위로와 용기 얻기를...”
등단 40주년 기념시집 『고비에서』 출간한 고운기 시인
-본인 소개
1961년 전남 보성 출생으로 한양대 국문학과와 연세대대학원 국문학과를 졸업(문학박사)했습니다. 198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고, 『밀물 드는 가을 저녁 무렵』, 『고비에서』 등 7권의 시집이 있습니다. <시힘> 동인으로 활동 중이며 현재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시집 『고비에서』를 내신 동기 및 소감
등단 후 5-6년 간격으로 시집을 간행했습니다. 『고비에서』는 제 6시집 『어쩌다 침착하게 예쁜 한국어』 이후 6년 만에 내는 제 7시집으로 개인적으로 등단 40주년을 기념하는 시집입니다. 40년이 그냥 눈 깜짝하는 사이에 흘러간 듯합니다.
-이번에 내신 시집은 시인께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제 6시집 이후 간암 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다행히 경과가 좋아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으나, 투별 과정에서 인생과 문학을 근본에서 다시 생각하는 소중한 체험을 했습니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 보이는 순간의 엄숙함과 귀중함, 시 한 편에서 위로와 용기를 얻기도 합니다. 새삼 내가 시인인 것을 진정 고맙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고비사막은 사람이 살기 어려운 환경이란 뜻도 있지만 광활한 초원이 펼쳐진 곳인데, 인생의 고비는 넘기 힘들어도 그것을 넘어서면 확 트인 새로운 세계, 고비사막과 같은 넓은 초원이 보이는 것처럼 서로 변증법처럼 연결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려운 일을 겪을 때 인생을 조금 더 넓게 바라보고, 어려움을 넘어서는 과정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특히 애착이 가는 시 한 편 소개
‘고비에서’라는 제목으로 쓴 시 가운데 두 번째 작품입니다.
아주 잠잠한 날도
병원 뒤쪽 언덕의 숲속 바위 턱에 가만 앉아 있으면
바람이 나뭇잎 살랑이더군
겨우 알아챌 만큼 실처럼 불어오더군
내 더운 몸 식히러 우주가 움직이는 낌새
수술을 마친 주치의가 말했어. 시뮬레이션 해보니 5년 뒤 생존율 65%, 순간 작은 한숨을 들었는지 다시 젊은 의사는, 수치일 뿐이지만요, 급히 말을 고쳤어. 서로 약속한 듯 멋쩍게 미봉彌縫. 5년 뒤, 그 때 나는 65 아니면 35 어느 쪽에 들어 있을까.
남은 수명 헤아려지니
기다릴 일과 소용없는 일 가려지더군
그러라고 바람이 살랑이며 실처럼 다가오는데
나는 문득
내 눈 안에 총명하게 발을 담가다오,
다짐하더군
-시와 관련한 일화가 있다면...
수술을 받은 병원의 뒤편에 야트막한 산이 하나 있어서, 그쪽으로 자주 산보를 나가는데, 더운 날도 가만 앉아 있다 보면 불어오는 바람이 그렇게 선선할 수 없었습니다. 투병 중엔 희비가 엇갈리게 마련입니다. 안 좋을 때는 좋을 때 마음 다잡았던 기억을 꼭 떠올려야 합니다. 선선한 바람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마음 흔들리지 말고 여여(如如)하기를 기원합니다. 그 때 “내 눈 안에 총명하게 발을 담가다오”라는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바람≒발’ 같아서 더욱 그렇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앞으로의 계획
맑고 재미있는 시를 쓰고 싶습니다. 읽어서 신나는 시, 노래로 만들어 불러서 좋을 시라면 더욱 좋겠습니다. 나처럼 큰 병을 앓은 이들에게 위안이 되길 바라는 마음, 또 나 자신이 절망에 빠졌을 때 시를 쓰며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많은 이들이 스스로 위안이 되는 그 무언가를 하나씩 품길 바라는 마음을 써나가겠다고 다짐합니다.
-뷰티라이프 독자들께 한 말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뷰티라이프의 독자와 시인의 마음은 하나도 다르지 않습니다. 시를 읽으며 트인 마음이 생활 속에 실천되어 나가기를 바라는데, 뷰티라이프의 독자는 누구보다 이런 마음에 공감하리라 믿습니다. 우리 모두 시의 아름다움이 자연스럽게 외모로 드러나기를!!!
<뷰티라이프> 2023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