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초대석(정진남 시인)
창의적인 존재 양식에 대한 성찰 시집
『한 몸이 될 필요까지는 없어요』 출간한 정진남 시인
-본인 소개 부탁합니다.
‘함께 하되 홀로 서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첫 시집 『성규의 집』의 시편 <따로 또 같이>에도 언급했는데, 음성 꽃동네 식당에 쓰여 있던 문구입니다. 시민들이 모여서 만든 신문사와 시민단체에서 짧은 기간 일한 적 있는데, 모두 더불어 함께 사는 방법을 고민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꿈을 이루기 위해 함께 하되 자기다움을 잃지 않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럴 때 저는 자유롭고 행복합니다. 그러기 위해 많이 읽고, 생각하고 쓰는 것인데, 특히 아름다운 시를 읽을 때, 기분이 좋아집니다.
-시집 『한 몸이 될 필요까지는 없어요』를 소개하면?
시집의 작품들은 사랑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시인의 양심으로 애썼던 시간 속에서 쓸 수 있었고, 쓴 것 같습니다. 더불어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사람 아닌 것들과 행복하고 풍요롭게 살기 위한 사랑의 관계를 고민하였습니다. 이제까지 우리가 갇혀있던 자명하다고 생각한 사실들을 변화시키고, 새롭게 이름 지으며, 게으르고 편협하게 배치된 사고의 틀에 균열을 일으켰습니다. 기존의 방식으로는 더 이상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지 못하는 인간·비인간들을 위해 창의적인 존재 양식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시집을 엮으면서 겪은 재미난 에피소가 있다면?
마땅한 출판사를 찾지 못해 헤매고 있었는데,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 잡는 것처럼 이윤학 선생님의 간드레 출판사와 연결되었어요. 하지만 시집 출간이 정해지고부터 또 저에게는 시종일관 어려움의 연속이었던 것 같아요. 출판사가 애초에 보낸 원고보다 더 많은 시를 보고 싶어 했기 때문에 시편들을 찾아서 노트북을 헤매길 수차례 거듭하였는데, 시집 출간을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던 순간들이었지요. 김진수 선생님의 평론과 이윤학 선생님의 출판서 책 소개를 읽었을 때 감동스러웠습니다.
-좋은 시에 대한 생각이나 시 창작관
고양이의 방문을 받는 시인이 되고 싶어요. 하하. 무슨 말이냐면, 루이스 세뿔베다의 소설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 준 고양이』에서 고양이들은 인간에 의해 위험 상황에 놓인 아기 갈매기를 구하기 위해 시인을 선택합니다. ‘그의 시를 들을 때마다 항상 즐거웠고, 계속해서 들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시구를 타고 하늘을 붕붕 날아다니는 느낌이 들었다’는 이유였어요. 아니나 다를까 시인은 지체하지 않고 당장 갈매기를 날려 보내는 일을 시작하여 고양이들을 깜짝 놀라게 합니다. 소설에서 고양이는 아무도 알아봐 주지 않는 이들을 대변하고 있어요. 고양이들이 좋아하는 시를 쓰고 싶어요. 하하. 소중한 생명을 구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시인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애착이 가는 시 한 편 소개
출토
천 년 만에 싹을 틔운 꽃씨 기사가 났다
경남 함양 산성 발굴지에서 발견된 마른 꽃씨
이 말라깽이 아이는 천년 동안 궁리만으로 인생이 말랐을 것이야
술도 먹지 않았는데 어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니
아무리 먹고 마시고 떠들고 울고 웃어도 바람에 날아가지 않은 건 밝게 잘 지어진 어둠 때문이다.
유리 쟁반에 깔린 솜뭉치 위에 기를 쓰고 도달한 까만 씨앗 한 알
당신이 감추었던 왼손을 내밀어 나는 오른손으로 잡는다
경첩은 딸깍 소리 내지 않는다
남아있는 우리들의 오른손과 왼손
절반씩 나눠 가진 불투명이 부서지지 않도록 서로 사랑할 수 있을까
투명과 불투명의 행진으로 돋아나는 꽃의 한살이를 보고 싶다
툴툴 털고 새싹과 줄기와 잎이 뻗어 오르며 출토되는 사진 속
지난 천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선명한 초록 핏줄이 타오르는 허공은 불투명하다
-앞으로의 계획
메리 올리브, 빈센트 밀레이, 아니 에르노, 에밀리 디킨슨, 에밀리 브론테를 좋아합니다. 자신과 세상을 사랑하는 예의 작가들처럼 좋은 작품을 쓰고 싶어요. 매일매일 읽고 생각하고 쓰는 생활을 한결같이 할 수 있을 뿐일 것 같습니다. 얼마 전까지 대학원에서 열심히 공부했었어요. 남겨둔 과제인 논문을 완성하고 더 깊이 있는 공부를 계속하고 싶습니다. 삶을 발굴하고 생명을 소중하게 지키는 시인의 꿈과 의무를 이행하는데 충실하고 싶습니다.
-뷰티라이프 독자들께 한 마디
유행이 중요하지만 그것이 아름다움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획일적인 아름다움이 아닌 자신만의 개성을 맘껏 살리는 아름다움을 보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더 새롭고 필요한 아름다움으로 모두가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세요.
<뷰티라이프> 2026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