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초대석(서대선 시인)
여성들의 아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
시집 『에올리언 하프』 출간한 서대선 시인
-본인 소개
경상북도 달성에서 출생하였습니다. 한양대학교 졸업(전교 수석), 단국대학교 대학원 특수교육전공 석박사 수료(교육학 박사) 중등학교 영어교사를 거쳐 신구대학 교수로 재직하였습니다.
2009년 시집 『천 년 후에 읽고 싶은 편지』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김남조 선생 특별추천( 『시와 시학』 2013 )을 받았습니다.
시집 『천 년 후에 읽고 싶은 편지』, 『레이스 짜는 여자』, 『빙하는 왜 푸른가』, 시 평론집 『히말라야를 넘는 밤 새들』, 『에올리언 하프』(북인,2026)이 있습니다.
2013년 『시와 시학』 신인상, 2014년 홍조근정 훈장 수훈, 2014년 한국예술 평론가협의회상(문학 부문), 2022년 한국경제문화 대상(문학) 수상을 하였습니다. 현재 신구대학교 명예교수, 문화저널21 문학담당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네 번째 시집 『에올리언 하프』를 소개하면?
시집 『에올리언 하프』는 사람이 악보에 따라 연주하는 악기가 아니라 바람이 악기의 현을 스쳐갈 때 내는 자연음만을 내는 악기입니다. 그러니까 바람의 강약, 바람의 방향에 따라 저절로 울리는 현의 섬세함과 미묘한 음향을 바탕으로 하는 악기입니다. 저는 이번 시집 속에 삶의 변방으로 몰려나와 고통이 일상화된 여성들, 특히 모진 인생의 질곡을 겪어내야만 했던 여성들의 아픔을 조명해내고자 했습니다. 수난의 시대를 혹독한 아픔으로 견뎌온 사람들, 특히 여성들이어서 겪어야 했던 시련들은 이제는 중년을 지나고 노년기에 이른 사람들의 잠재의식 속에 트라우마로 살아 있습니다. 낯익음의 면면들이 너무나 낯익었던 것이어서 오히려 낯설게 다가서는 그런 곡절들을 섣불리 대상과 거리를 좁히지 않고 거리를 적절히 조정하여 그들을 시의 무대에 세워보았습니다. 시인인 제가 “에올리언 하프”가 되어 연민보다는 해상도 높게 그들의 아픈 모서리를 드러내려 했습니다. 그 외에도 자본주의 그늘에서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회적 약자들도 시의 무대에 세워 읽는 이들의 감각을 깨우려 했습니다.
-이번 시집을 내시게 된 동기 및 소감
이번 시집 『에올리언 하프』는 저의 4번째 시집이 됩니다. 시인으로서의 정체성 같은 것도 생각했습니다. 평생을 시인인 남편 곁에서 시인의 고뇌, 방황, 탄식, 시를 찾아가는 고행의 길을 체감하면서 시는 단순한 언어의 유희나 삶의 여기餘技 정도로 치부하는 세태에 휩쓸려서는 안 된다고 다짐하곤 했습니다. 우리가 이웃에서 만나는 사람들 중에 오늘의 자리에 오기까지 만날 수밖에 없었던 불운과 상처와 절망들이 그림자(shadow)로 남아, 한처럼 차곡차곡 쌓여 있는 분들을 시의 무대에 올려 위무해 주고 싶었습니다. 가령, 아버지 노름빚에 팔려 온 여자아이가 유년을 거쳐 와서 나이 60이 되고 70이 넘은 사람들, 가난 때문에 돈에 팔려 광대 차력사를 따라다니며 매를 맞고, 병들고 버려져 타향에서 죽은 소녀, 남의 집 부엌일을 돕는 부엌떼기 여자아이, 선천성 불구로 태어난 아이, 소년 소녀 가장이 되어 자본주의 그늘에서 아르바이트로 지치고, 허기진 아이들...가슴 속에 시커먼 멍들을 지닌 채, 어른이 되었어도 여전히 변방의 사람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을 불러내 보듬어 주고, 손잡아주고 싶었습니다.
-이번 시집을 읽으실 독자들에게 팁이 있다면?
제 시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가상의 존재가 아닙니다. 저의 유년 시절, 토건업체를 운영하던 아버지께서는 버려진 사람들을 보살펴 주고, 기술도 가르치고, 공부도 시켜 사회로 내보냈습니다. 그래서 집에는 늘 많은 사람들이 함께 생활하기도 하였는데, 그들에게서 듣기도 하고, 제가 살던 마을에서 실제 존재했던 실존 인물들의 사연을 만나기도 했고, 듣기도 했습니다. 시의 주제가 선명하고 시적 리듬도 있어서 쉽게 시에 다가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특히 시 “미자”는 노래로 작곡되어 유튜브에서 인기리에 방송되고 있습니다. 찾아서 들어 보신다면 시와 노래가 만났을 때의 감정이입과 공명으로 시에 가까이 갈 수 있는 밈(meme)이 더욱 잘 일어나리라 믿습니다.
-애착이 가는 시 한 편 소개
미자
부엌데기
열네 살 미자,
아버지 노름빚에
팔린 아이,
누렇게 뜬 떡잎인 채, 이삼 년
공사판 함바집 귀퉁이 엎어진
홀아비 잡역부 만났다지,
세상 허기진 사내 하나 만났다지,
쪽방 뜨락엔 백일홍 피어났다지
다폴다폴 채송화도 난만하였다는데
꽃 지고, 꽃 지고 없는 어느, 어느 날
공사판 흙더미에 묻힌 사내 몸에
엎어져 흐느꼈다지
사내 닮은 유복자 아들 안아 올리고
진자리 마른자리 허리 펼 날 없었어도
공고 나온 아들 작업복 입은 모습
남편 살아온 듯 글썽이며
밝은 날 오길 기다렸다지
세상 작두에 다리 잘린 아들
재활병동에서 새우잠 설치다
잘린 다리 발가락이 가렵다는 아들,
찬비 흩뿌리는 세상
아들의 없어진 발가락을
긁어주는 미자
추운 날의 여자, 미자.
-앞으로의 계획
올해 후 반기쯤, 서대선의 시평론집 『설산을 오르는 눈표범』을 발간할 예정입니다. 살아가면서 제일 중요하게 다가오는 것은 시간에 대한 의식과 관리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읽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제대로 읽고, 음미하고, 책 속의 길을 찾아 다시 옷고름을 고쳐 매야 하는 “고전”들을 곁에 두고 친구 삼겠습니다.
저의 치유와 삶의 공간인 자연 속에서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고자 합니다. 텃밭에서 눈뜨는 생명들과 이야기 나누고, 뒷산에 우거진 나무들에게 삶의 지혜도 배우고, 철마다 날아드는 철새들에게 산 너머 먼 나라 이야기도 받아 적고, 우리 집에 기대어 사는 길고양이들과 족제비, 다람쥐, 청설모, 도룡룡, 개구리와 삽살이, 아침마다 나뭇가지 사이에 아름다운 집을 짓는 거미들, 나와 통성명은 하지 않아도 내 삶의 터전에서 숨 쉬고 있는 다양한 생명들과 만나며 그들의 이야기도 받아 적어 시의 무대에 올리고 싶습니다. 물론 제 삶을 거쳐 가는 사회적 약자들과 상처 깊은 여성들에 대해서도 제 정신의 “에올리언 하프”를 울리게 하여 그들을 시의 무대에 올려 위무해드리고자 합니다.
-뷰티라이프 독자에게 한마디
책 『뷰티라이프』를 보시는 분들은 누구일까요? 아마도 뷰티라이프에 관여하거나, 뷰티에 참석하거나 뷰티를 생산해 내는 분들이겠지요? 잡지 『뷰티라이프』가 놓여있는 그 곳은 사람들과 사람들이 만나서 뷰티한 라이프를 창조하고, 기뻐하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더불어 삶을 이야기하는 분들이 만나는 곳일 거예요. 어쩌면 제 시집 『에올리언 하프』 속에 나오는 여성들의 삶보다 더 가슴 아픈 사연을 지닌 분들도 만나게 되리라 봅니다. 제 시가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이 세상에서 같은 상처를 알아보고, 토닥여주고, 보듬어 줄 수 있을 때, 80억 인구가 사는 지구는 좀 더 살만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
<뷰티라이프> 2026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