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초대석(백선 시인)
인간의 욕망과 대지의 생몰을 긍정적으로 표현한,
시집 『사막과 찬가의 변증』 출간한 백선 시인
-본인 소개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백선(栢仙)입니다, 저는 2009년 <유심>으로 등단 후 본명 김향미라는 이름으로 시를 써오다가, 올해 2025년 첫 시집 『사막과 찬가의 변증』 출간을 계기로 백선이라는 필명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필명 사용할 기회를 늘 기다리다가 적절한 시기라 생각한 지금이 백선의 기점이 되었습니다. 그 이름에는 제가 좋아하는 향기(栢)와 추구하는 이상(仙)이 있는 것 같아 서슴없이 선택할 수 있었답니다.
-시집 <사막과 찬가의 변증>을 소개하면?
<‘운동하는’ 세계와 ‘갱신되는’ 자아의 다양체>라는 꼭지를 달고 김재홍, 시인이자 문학평론가가 쓴 제 시집의 해설을 빌려 말씀드리자면, 시인은 ‘대상을 부정하지 않지만, 즉자적으로 묘사하려 하지 않’으며 ‘우발적이기까지 한 시상의 돌출’ 등, ‘시적 다양체를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자신마저 부정함으로써 새로운 자기를 찾아간다’고 표현했습니다. 의도적이지 않았지만 제게 시란 결과적으로 그렇게 태어나는 것 같습니다. 이건 표현의 문제이고 시적 주제로 말하자면 인간의 욕망과 대지와 생과 몰의 긍정을 다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시집을 읽을 독자에게 드릴 팁이 있다면?
제 시집에서 가끔은 자연스럽게 소통되는 시가 있고 또 가끔은 소통이 부재하는 시가 있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모든 독자에게 시와 그 의미에 골몰하여 읽으라는 말은 할 수 없습니다. 편안하게 읽으면서 즐길 수 있기를 고대합니다. 추상화를 보듯이 (구경하듯이) 보다가 멈추고 싶은 곳이 있다면 머물며 고민하는 즐거움도 이 시대에 필요한 시간이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좋은 시에 대한 생각
시를 읽은 후에 구별할 수 있는 좋은 시란 내면을 터치하는, 울림이 있는 시라는 생각입니다. 요즘은 시를 안 읽는 사람이 더 많은 게 현실인 것 같습니다. 시를 쓰는 사람이 시를 읽고 쓰지 않는 사람들은 안 읽는, 악순환이라는 말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쓰는 입장에서는 많은 사람이 읽는 시가 좋은 시이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어떤 작은 깨달음이나 소소한 감동 또는 아름다운 이미지를 만들어주고 보편적이지 않은 생각이나 표현들 등, 독자의 어느 한 부분이라도 건드려준다면 좋은 시가 아닐까요. 저는 감동이라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싶습니다. 희망 사항입니다.
-시 한 편 소개
다시 겨울을 준비해요
바늘 코에 꿰여 따스한 짐승이 되는 실뭉치
비행운에서 끌어온 뜨개질이 끝날 줄 모르죠
항도의 등불에 주둥이를 꽂고 모으는
꿀은 언제나 감동이라 말할래요
시작을 잊은 지도 오래 되었죠
이국의 언어 같은 연주곡을 따라
혼자만의 가락이 실타래를 타고 흘러나와요
빈 페이지는 건조법을 반복하는 건식과 습식의 덕장
얼다가 녹은 느낌표가 줄에 꿰여 말라가고 있어요
색색의 조각을 묶는 줄의 길이가 제각각이어서
반복과 차이가 조화로운 이론
맴돌다 떠나는 바람의 크기를 재고
순환할 우기의 일정표를 짜요
손바닥을 펼치면
새로운 항로를 만들 수 있어요
줄을 잃어버리지 않아야 하죠
심장박동을 의심하는 시선이
디오니소스의 조각상에 거미줄을 걸어요
문장의 가장자리에 그려 넣은 신의 조각상들
느낌표라 부를 게요
불완전에 대한 불안정을 모자이크 하는
조각 하나하나가 불후의 걸작을 예고해요
뜨겁고 떨리는 기도 속에 호명되는 이름, 모두를
소환하고 싶어요
추운 화덕의 모순을 직조하는
대기실은 지금 겨울이에요
눈 속에 묻힌 꽃잎을 찾아야 해요
반복과 차이를 벗어나기 위해 터져야 할 예고편이죠
대답 없는 아이를 부르는 목소리랄까요
외줄을 타고 절벽을 가로지르는 울림
새로운 신이 탄생할 시간이에요
지금 세계에는 (현시대는) 극단의 현상들이 많아서 봄이나 가을처럼 우리 기분을 좋아지게 만드는 계절이 줄어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감동이나 평온이 필요한 시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또 관심을 가지고 깊이 들여다보면 모두가 주어진 세계-내-존재로서 최선의 방향을 정하고 살아가는 모습이고, 그 자체로 기적이고 감동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고요. 냉혹한 계절을 준비하는, 감동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대라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계획
앞으로 저는 잘 웃을 예정이고요 주어지는, 다가오는 시간들을 잘 지나갈 예정입니다. 물론 좋은 시를 쓰고자, 감동이라는 것을 찾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모든 걸 잘 하며 지내고 싶습니다. 잘 못하는 일도 잘 하는 즉, 못하는 것도 즐길 수 있는 초 긍정 마인드로 말이죠. Well-dying을 희망하면서 Well-doing을 다짐합니다. 사실 저는 계획이라는 걸 잘 못 만드는 사람이지만 다짐이라는 말은 자주 사용합니다. 현재의 필요에 따른 일시적 언어적 사용이고, 지켜낸다는 보장 없는 휘발성 사용이라는 점은 참고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뷰티라이프 독자들께 한 마디
창밖에 숲이 일렁이고 있습니다.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우리는 그 힘과 손길을 감각할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바람의 역할처럼 우리는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 [좋은] 영향들이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존재 그 자체가 아름다움이고 기적이라는 흔한 얘기들이 가끔은 깊은 감동이 될 때가 있습니다. 숲의 푸른 잎들이 곧 말라가면서 흩날리는 시간이 다가오겠지요. 독자 분들께 세상의 모든 존재와 모든 순간이 아름다움의 원인이 되는 충만한 시간들로 채워지는 일상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뷰티라이프> 2025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