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초대석(한상호 시인)
되고 싶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의 간극
<어찌 재가 되고 싶지 않았으리> 시집 출간한 한상호 시인
-본인 소개
환갑 무렵에 시를 쓰기 시작한 늦깎이입니다. 부친의 병과 죽음을 지켜보며 예민해진 감정을 글로 다듬은 것이 등단으로 이어졌고 이제는 시를 쓰지 못하면 안절부절못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평생 회사원이었는데 약 16년 동안 자발적 디아스포라로 타이완, 홍콩 그리고 중국에서 살았습니다. 현대엘리베이터 대표이사를 끝으로 48년간의 대도회 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양양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부부합창단도 하고 숲해설도 하며 중국 고전을 다시 꺼내 읽으면서 소일합니다.
-그간 낸 시집 소개
첫 시집 <아버지 발톱을 깎으며>는 병이 깊어지는 아버지를 모시면서 얻은 글이 주를 이루었고, 두 번째 <단풍 물들 나이에야 알았다>에는 환갑 지나고 직장에서 은퇴하던 즈음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쓴 시가 많습니다. 세 번째 <꽃이 길을 놓았을까>는 귀향 후 출간한 것으로 젊은 날을 회억하며 사랑의 궤적을 더듬어보았고, 전자책으로 나온 네 번째 <젖은 노래를 부르셨다>에는 사부 사모의 글을 실었습니다.
-<어찌 재가 되고 싶지 않았으리>의 출간 동기
<어찌 재가 되고 싶지 않았으리>는 ‘숯’이라는 시의 본문입니다. 예로부터 인간은 다른 동물과는 달리 욕망과 그것을 제어하려는 윤리라는 올가미 사이에서 번민하며 살고 있습니다. 다 타지 못한 숯의 심정은 어떨까, 체념(諦念)하지 못해 체념(滯念)이 된 것들을 써보고 싶었습니다. 되고 싶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의 간극들이 적혀있습니다.
-시의 모티프는 어디서 어떻게 발현되는지
고향이란 모티프를 가지고 연작시를 쓰고 있는 중인데 이렇게 의도적으로 모티프를 잡고 쓰는 글도 있지만, 갑작스레 떠올라 글감이 되는 것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런 돌발적인 글감도 따지고 보면 다 평상시에 생각하던 ‘무엇’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구체적인 사물이나 상황이 그 ‘무엇’과 만나 시로 발현되는 것 같습니다. ‘시란 나를 들여다보는 도구다.’라고 생각합니다. 눈에 뜨이는 것들 중에 ‘한상호스러운 것’이 저의 시가 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예를 들면, 2005년 낙산사에 큰 화재가 발생하여 사찰이 다 타버렸습니다. 원통보전은 물론 국보이던 범종까지 태우고 녹여버렸던 불길 속에서도 종이에 개금(蓋金)을 한 관세음보살상은 살아남았습니다. 가볍고 작은 불상이어서 살아남은 것입니다. 종교란 무얼까, 종교가 가르치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평소의 사유가 이 시를 쓰게 한 것 같습니다.
-애착이 가는 시 한 편
열심히만 살다가 가지는 말아야지 다짐했지만, 제 부모가 그랬던 것처럼 저도 그런 삶의 패턴에서 멀리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반면교사든 정면교사든 부모에게서 배우는 게 참 많은 것 같습니다. 부친과 저를 오버랩 시켜본 이 시를 특별히 좋아합니다.
방사통 내력
절만 잘해도 굶지 않는다
아버지가 그러셨다
남이 한 번 숙일 때 열 번을 숙였다
영업은 그리하는 거라 배웠다
보너스 사탕에 진급 마약에
허리란 본래 휘는 건 줄 알았다
허리에서 발바닥
일자로 쭈욱 뻗대는 통증
4번 5번 굽은 요추에 협착이 왔다
아버지도 그러셨다
-뷰티라이프 독자들에게 한 마디
아름다움은 건강함과 순정함에도 맞닿아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을 아름답게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려고 애쓰시는 뷰티 인더스트리에 종사하는 모든 분들에게 2024년 매일 매일이 화양연화로 기억되기를 기원합니다.
<뷰티라이프> 2024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