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용인보(美容人譜)80
미용에 시를 덧부치다
시 쓰는 미용인, 김정조 원장
고은 시인은 주위 사람들 만 명을 대상으로 시를 짓고 <만인보>라는 시집을 출간했다. 이는 시인이 주변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알려주는 단적인 예이다. 기자는 이를 차용하여 주변 미용인에 대한 시와 스토리를 매달 한 편씩 쓸 예정이다. 그 중에는 성공한 미용인도 있을 것이고 동네에서 나 홀로 미용실을 운영하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기자에겐 모두 소중하고 고귀한 미용인 자산이다. 그분들과 함께한 생활이 기자에겐 기쁨이고 행복이다. 우리는 미용으로 엮어진 떼려야 뗄 수 없는 미용가족이니까.
이완근(본지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alps0202@hanmail.net
미용과 시는 하나
-김정조 원장
미용과 시는 하나로세
미용으로
외모를 아름답게 하여
결국에는 내면의 아름다움까지
잉태하듯이
시로써
생존의 의미를 확인하고
나의 존재를 각인하여
인생의 고민을 함께 안네
고객은 나를 살아있게 하는 힘
미용과 시로
내외적 아름다움과
정신적 상처를 치유하니
이 얼마나
고귀한 손이던가
이보다 더한
예술가가 있겠는가
한올한올 머리를 담듬듯
한자한자 영혼을 불어넣으니
어여 오소서
나의 시여
나의 미용이여
김정조, 특출한 성과를 내고 있는 미용인 시인
미용인 중에서는 미용 외의 부문에서 두각을 발휘하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문학, 서예, 회화, 캘리그라피, 시낭송 분야 등입니다. 그 중에서도 미용인 시인들이 많은데, 우선 생각나는 미용인만 해도 10여 명을 훌쩍 넘습니다. 미용인들이 감수성이 발달해 있을 뿐만 아니라, 손끝의 섬세함만큼 정서적으로도 사물을 표현하는 데 특화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어쨌거나 기자는 미용인 중에서 시를 쓰시는 분들을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기자가 국문학을 전공했기 때문은 결코 아닙니다. 시를 쓰는 마음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기자는 잡지를 만들면서 미용과 예술을 접목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미용과 예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캘리그라피를 연재했고, 매달 화가 분을 소개하고 있으며, 미술평론 연재를 싣고 있습니다. 저자 초대석을 마련해 저자들과 미용인의 만남을 주선하고 있습니다. 특히 ‘시 읽는 즐거움’이란 꼭지를 마련해 매달 한 편의 시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을 함축한 절창, 바느질
김정조 원장은 기자가 아는 미용인 시인 중 자기의 세계를 구축하며 미용과 시 분야에서 특출한 성과를 내고 있는 미용인 시인입니다. ‘시 읽는 즐거움’에 소개하지 않았을 리가 없습니다.
바느질
김정조(1954~ )
상처를 꿰맨다
아파서 해지고 구멍 난 것들
모두 가져다 상처를 메꾼다
늦은 밤
불면을 바느질하던 어머니도
숱한 상처를 다독이고 기웠으리라
가난과 상처를 달래던 바늘과 실
어머니의 한 땀 한 땀으로 치유되던 날들
딸아, 한 땀이라도 정성을 기울이렴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114번째 시는 김정조 시인의 “바느질”입니다.
아침에 늦은 출근을 하고 있는데, 중년의 여인 두 분이 반갑게 얼싸안으며 만남의 즐거움을 나누고 있습니다.
“지금 문화센터 가는 길이에요?” “요즘 안 보이셔서 궁금했어요.” “지금도 에어로빅하세요?” “살이 잘 안 빠지네요. 그래서 약 먹고 있어요.”
두 분의 해후와 안부는 끝을 모를 정도입니다.
두 분의 반가움을 뒤로 하고 출근길을 재촉하고 있는데, 갑자기 시골 어머니 생각이 떠오릅니다. 이가 안 좋으셔서 먹을 것을 제대로 드시지 못한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며칠 전에 들었습니다. 어머니뿐만이 아닙니다. 장모님은 무릎이 성치 않으셔서 잘 걷지를 못하고 계시다는 전갈입니다.
우리 어머니들은 다 그런 분들이십니다. “가난과 상처”를 이겨내고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신 분들입니다. 가난을 “바느질”로 이겨내신 분들입니다. 우리의 가난은 “어머니의 한 땀 한 땀으로 치유되”었던 것입니다. “불면”의 “바느질”이 우리의 “상처를 메”꾸어 주었기에 오늘날의 우리가 평안한 삶을 영위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건강을 위해 오늘날 문화센터에서 우아하게(?) 운동을 하는 것도, 난을 치는 것도, 어머니의 “숱한 상처를 다독이고 기웠”을 “바느질”이 없었다면 가당치나 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의 앞으로의 삶은 “정성을 기울”여 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이 시를 읽으며 하게 됩니다.
역시나 지난 2023년 1월호에 이렇게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을 함축해서 나타낸 절창이었습니다.
김정조 원장은 아이들이 초등학교 저학년 다닐 즈음, 미용을 시작했습니다. 1990년 미용학원에서 미용을 배웠고, 미용보조를 거쳐 1996년 11월 초, 김장철에 미용실을 개업했습니다. 주부가 바쁜 계절이어서인지 덩달아 분주했지만, 예쁘고 깔끔한 디자인, 착한 가격으로 30년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고객과 깊은 신뢰 관계 유지
김정조 원장은 시를 쓰는 미용인답게 고객들과도 깊은 교감으로 신뢰를 쌓고 있습니다.
“인생길에서 벽에 부딪치는 인생을 봅니다.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고민을 들어주며, 고객의 머릿결을 디자인하고 정신적 아픔도 같이 고민합니다. 의처증 남편 이야기, 알콜중독 남편 이야기, 퇴직금 투자로 사기당한 이야기, 선의로 빌려준 생활자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사기피해 등등... 상처 받은 손님들 중에 문학소녀, 청년들이 있습니다. 카톡으로 지도해 드리고 지방 계간지, 중앙 계간지로 꾸준히 등단시켜 드렸습니다. 고객들의 인생의 절벽에 선 절박한 상황들을 함께 고민하고 이겨내길 기도합니다. 순리대로 살아가며 행복한 인생도 많습니다. 하지만 같이 이겨나가는 회망이 보이는 길에 서면 보람을 느낍니다, 헤어디자인을 고객 맞춤으로 아름답게 꾸며주는 동안 정신적 상처도 같이 공유합니다.”
고객들의 김정조 원장에 대한 신뢰와 인간적인 교감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미용인들의 위상을 높이는 방법을 김정조 원장은 체질적으로 수행하여 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시 창작은 생존의 의미
김정조 원장은 뼛속 깊이 문학을 사랑하는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글자를 배우면서 동화책을 읽었습니다. 집에 있는 책, 친구집에 있는 책을 읽던 초등학교 시절이 지나고 중학교 입학하고는 수업이 끝나면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습니다. 문예반 활동은 당연한 일. 백일장에서 김정조 학생의 시는 활자화되어 교지에 실렸습니다. 고교시절의 문예지 편집장, 백일장에서 입상은 부지기수. 상고를 졸업하고 취업한 직장, 그곳에서도 백일장을 거친 사보기자, 편집일을 겸하였습니다. 40대 후반 지역문인협회에 열 편의 시를 심사받고 지역문협에 가입하였습니다. 2005년 경기문학, 2011년 문학나무로 재등단하였습니다. 시 창작을 생존의 의미라 생각하고, 50대 후반에 시작한 국어국문학 공부는 시를 쓰기 위해 나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고 술회합니다.
인생을 참되게 사는 사람들의 삶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합니다. 더구나 타인을 외면을 아름답게 꾸미고, 거기에 더하여 정제된 언어로 정신적인 세계까지 고양하고 있는 김정조 원장은 새로운 미용인의 표본에 다름 아닙니다.
앞으로도 문학활동과 미용일을 훌륭하게 수행하기 위해 ‘정신과 몸의 건강관리’라는 원칙을 고수하며 살고 있는 김정조 원장이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는 시를 더 창작하고, 그리하여 미용인의 위상을 더 높여주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입니다.
프로필
-1954년 대전 출생, 시인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진로그룹 사보 편집기자 및 편집위원 역임
-2005년 <경기문학>, 2011년 <문학나무> 신인상
- <문학나무> 시인상
-시집 <따스한 혹한>, <바람의 눈> 출간
-안성문인협회 부회장 역임, 한국미소문학 부주간 역임
-<문학나무> 추천심사위원
-한국시인협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한국여성문학인회 회원
<뷰티라이프> 2026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