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호흡하는 문화컬쳐 ‘홍대컬렉션’
미용인이라면 누구든 입성할 수 있는 문턱 낮은 헤어쇼를 만들고 싶다던 양리헤어 양리원장의 ‘홍대컬렉션’ 비하인드 스토리
지난 01월 10일 대한민국 최초로 브랜드를 위한 헤어쇼가 아닌 전문 미용인들의 의해 미용인들을 위한 디자이너 헤어쇼가 ‘홍대컬렉션’이라는 이름으로 개최됐다. 전국에서 모인 32명의 미용사들이 총 세 번의 걸친 미팅과 257일간의 여정. 기적이라는 뜻의 미라클이라는 팀 명 아래 진행된 ‘홍대컬렉션’ 그 비하인드 스토리의 주인공 양리헤어 원장 양리를 만났다.
홍대 헤어쇼를 진행하게 된 계기는 3~4년 전부터 세계적인 헤어쇼를 관람하며 자신도 저런 쇼를 진행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고 말하는 양리원장. 작은 규모 살롱의 경우 헤어쇼에 참가할 방법이 많지 않은 환경이 안타까웠다며 헤어쇼를 진행하게 된 계기를 전했다.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그런 헤어쇼를 만들고 싶었다는 그는 일본에서 개인 브랜드 8곳이 모여 만든 헤어쇼를 보고 ‘우리도 저런 쇼를 기획해 보자’는 동기가 생겼다고 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우리나라 31개의 브랜드에서 31명의 디자이너를 SNS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선착순으로 모집했고, 각각 팀을 나눠 5가지의 부분 (Short, Men's, Mideum, Long, Realitive)으로 구성하여 이미 완성된 스타일을 관객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닌 커트의 전 과정을 무대에서 보여주는 헤어쇼로 진행했다. 미용사들의 가장 멋있는 퍼포먼스는 역시 커트를 하는 모습이라고 생각한다는 그는 그렇게 홍대컬렉션만의 색을 만들었다.
퍼포먼스를 넣지 않는 큰 이유는 커트 하는 모습 자체가 가장 미용사답다는 그의 신념에서 비롯되었다. 각 무대가 끝이 나면 작품을 기록하기 위해 이뤄진 촬영 또한 미용사들이 도맡아 진행했다. 협찬만 받으려는 자세는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며 “이번 쇼를 진행하면서 미용사들이 할 수 있는 부분은 다했어요. 먼저 협찬해 달라고 손 내밀지 않은 거죠. 그건 협찬을 못 받으면 못한다는 말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먼저 우리가 해볼 수 있는데 까지 해보자’는 생각이었죠” 대관했던 장소가 콘서트홀이었던 덕분에 기본적인 음향과 조명이 준비된 상태에서 음악 하는 지인과 비보이 하는 친구에게 무대연출을 도움 받을 수 있었다는 그는 덕분에 많은 투자비용이 들지 않고 쇼를 진행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팀원들과 후배들에게 기록을 남겨주기 위해 준비 영상과 그간의 제작 과정을 DVD로 담으며 소규모 개인 살롱이 불가능했던 일들을 ‘연합’이라는 힘으로 해낼 수 있는 쇼였다고 양리 원장은 소감을 밝혔다. 또한, 협찬을 받아야만 팸플릿에 로고를 넣는 고정관념을 깬 그는 팀원들에게 ‘먼저 홍보하고 싶은 브랜드가 있으면 모두 기재하라’고 말했다, 후에 협찬사로부터 많은 연락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화환 또한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그는 팀원들과 쇼 진행을 위해 화환 대신 필요한 간식으로 대체했다고 말했다.
현재 운영하는 살롱과 병행하며 며칠 밤을 새며 준비해야 했던 그는 한번은 해야 했던 일이었다며 담담하게 그간의 고충을 털었다. ‘우리가 최고야!’ 라는 헤어쇼의 느낌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그는 쇼를 준비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스페셜 무대로 꾸며진 현업 선배님의 무대를 꼽았다. 현업에서 일하는 선배님 중에 무대에 세우고 싶은 분을 공동결정으로 추천받아 63세의 앙리원장님을 어렵게 섭외해서 꾸민 스페셜 무대를 였다.
미용인들에게 헤어쇼의 문턱을 낮추는 계기와 누구나 관심을 두고 노력한다면 언제든 참여할 수 있는 헤어쇼의 또 다른 문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그는 이번 여름 즈음 다시한번 오디션계획을 밝혔다. 지난 1월에 치러진 1기생들도 오디션을 통해서만 다시 참가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했다. 의지가 있는 친구들이라면 계속 경험치를 쌓고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게 이유다. 홍대컬렉션 쇼를 준비하던 팀원들 중 자신의 살롱에 3명의 직원을 둔 팀원도 있었고 혼자 살롱을 운영하는 팀원도 있었다. 소규모 살롱을 운영하는 미용인들이 쇼에 참가하면서 많은 사람 앞에 서는 막강한 팀에 소속된 것이다. 쇼를 본 후기들이 들려왔다. 관람객으로 참가했던 미용인들이 무대 위로 뛰어 올라오고 싶었다고 했다.
누구나 관심을 두고 참여했다면 누구든 쇼에 설 수 있는 헤어쇼였기에 그랬다. 양리원장은 마지막으로 말을 전했다. ‘살롱워크는 대충 준비 없이 해도 되고 헤어쇼는 뭔가를 준비해서 멋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헤어쇼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살롱워크를 한다면 성공하지 않을 살롱이 없다는 거죠. 우리가 일하고 있는 살롱에서 불 꺼놓고 조명하나 키면 그것도 일종의 헤어쇼가 되는 거잖아요. 그런 무대를 많이 만들어서 미용인들에게 일상이 헤어쇼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 원장님의 미용 히스토리를 들려주세요.
인터뷰를 정말 많이 했어요. 그런데 십 년째 떠오르는 스타라는 호칭이 붙더라고요. (웃음) 제가 마흔이 넘었는데 한국에서 마흔이 되면 현장에서 빠지는 분이 많으시거든요. 그런데 저는 아직 현장이 좋고 활동을 많이 하는 편이죠. 많은 분이 갸우뚱하시기도 해요. 굉장히 예전부터 활동한 것 같은데 아직도 활동하나? 싶으신 거죠.(웃음) 제가 우리나라에서 제 이름을 걸고 미용인 커뮤니티를 만든 것이 처음이었어요. 살롱을 위한 커뮤니티가 아닌 개인 디자이너 교류를 위한 매체였죠.
-미용은 어떻게 시작하셨어요?
스물여섯 살에 미용을 시작했어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기술 한번 배워볼까?’ 하는 생각이 시초였죠. 면접을 많이 봤는데 번번이 낙방했어요. 아마 제 외모 때문이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웃음) 그때 당시 미용하는 사람들은 모두 청담동으로 모이던 시절이었어요. 저도 막연하게 청담동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살롱을 찾아갔죠. 정말 재밌는 건 제가 얼마 전 그곳에 가서 기술 교육 세미나를 하고 왔다는 거예요. 감회가 새롭더군요. 1열여든해 전에 초보 미용사로 면접 갔던 곳에 열여든해 후에는 교육자로 갔다는 게 스스로 ‘정말 열심히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희열도 느꼈고요.
- 스물여섯에 시작한 미용에 남다른 공부법이 있었나요?
있죠. 되게 무식했어요. 미용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 상태에서 미용업계에 뛰어들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공부법이었어요. 미용일은 전혀 알지 못하니까 작은 일을 시켜도 너무 재밌었어요. 빗자루질만 해도 너무 신나는 거예요. 샴푸를 시키면 샴푸 일만 생각하느라 중화조차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샴푸에 집중했어요. 다음 일을 생각할 조차 여력이 없을 정도로 단순한 일에 집중했죠. 청소를 잘 할 때쯤 샴푸 하는 사람을 눈여겨 보고 샴푸를 잘할 때쯤 중화하는 사람을 눈여겨 보고 그랬어요. 바로 다음 단계까지만 보는 거예요. 그렇게 하나하나 내 기술을 만들어가는 나를 보게 되더라고요. 스텝으로 일할 때 그때 당시 월급의 반 가격을 하던 도구를 주문했던 적이 있어요. 재료상에서 ‘당신이 왜 이 제품을 구입하느냐’는 질문에 ‘나는 미용사가 아니냐’고 오히려 제가 물었어요. ‘디자이너 선생님 모두 가지고 있는데 나 또한 가지고 있는 것이 이상한 것이냐’고 반문했죠. 디자이너 선생님께서 롤 브러쉬를 5개를 가졌다면 저는 6개를 가지고 있었어요. 디자이너 선생님께서 어떤 잡지를 보고 있다면 나는 또 다른 잡지를 한 권 더 봐야 했어요. 안 그러면 제가 이길 방법이 없는 거예요.
예를 들어 스물여섯에 미용을 시작한 나는 스물두 살에 시작한 친구보다 이미 4년이나 늦게 시작한 셈이 되죠. 제가 그 친구를 이길 방법은 오직 시간밖에는 없는 거예요. 남들과 똑같이 자고 생활하는 것으로는 그들을 이기는 방법은 없어요. 결국, 공평한 건 ‘시간’이기 때문이죠. 그들보다 더 일찍 살롱에 나와 준비하고 하루를 시작하는 것 밖에는 없었어요. 시간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이냐면 해가 바뀌면서 습관이 된다는 사실이에요. 스물여섯 살의 시간과 스물 두 살의 시간이 어느 순간이 되면 맞닥뜨려지게 돼 있어요. 하루에 여덟 시간을 일한 사람과 하루에 열여섯 시간씩 일하는 사람의 시간이 맞닥뜨려지면 어느 순간 뒤집히게 되어있어요. 시점이 바뀌어 버리는 거죠. 그때부터는 반응 속도가 달라져요. 굉장히 단순한 거예요. 사람들은 그런 단순한 것을 하지 않죠.
내가 내 옆에 있는 사람보다 더 열심히 하지 않으면서 그 사람보다 더 잘되길 바란다는 게 말이에요. 굉장히 이치상 맞지 않는 거예요. ‘난 유명해 지고 싶지 않아. 이 정도 벌면서 먹고 살아도 돼’ 하고 말한다면 그렇게 살아도 돼요. 그렇지만 유명해지고 싶기도 하고 손님한테 인정받고 싶기도 하고 돈도 많이 벌었으면 좋겠고 네트워크 안에서도 사람들의 공감을 많이 얻어내고 싶으면서 남들과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쉬려고 한다면 그건 분명 이치에 맞지 않는 거잖아요.
-홍대컬렉션이 어떤 목적을 두고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이야기해주세요.
대한민국 미용 부분도 현실을 피해 갈수 없는 어려운 상황에 있어요. 이럴 때 누군가는 무언가를 준비하고 극복해 나가기도 하죠. 다양하고 양질의 미용 문화 컨텐츠를 만드는 것이 그 답이라고 생각했어요. 홍대컬렉션은 1인 살롱부터 규모 있는 살롱까지 누구나 참여 할 수 있는 무대예요.
의지가 있는 미용사라면 누구라도 형평성 있는 조건에서 무대에 설수 있도록 살롱별 한명의 모델만 선정하여 행사에 참여하게 되죠. 홍대컬렉션을 통해 다양한 미용문화가 생가나길 희망합니다.
컬렉션의 경험을 통해 대한민국 미용인들이 성장하고 더큰 세상의 무대에 설수 있기를 바라요, 내년에는 여러분도 무대의 주인공이 되어주세요. 그렇게 뜨거운 미용사의 온도가 느껴지는 홍대컬렉션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