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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초의 미용예술학 박사 홍도화
글쓴이 : 뷰티라이프 날짜 : 2025-06-23 (월) 10:53 조회 : 597


미용인보(美容人譜)74(홍도화)

 

미용, 길을 내다

대한민국 최초의 미용예술학 박사 홍도화


고은 시인은 주위 사람들 만 명을 대상으로 시를 짓고 <만인보>라는 시집을 출간했다. 이는 시인이 주변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알려주는 단적인 예이다. 기자는 이를 차용하여 주변 미용인에 대한 시와 스토리를 매달 한 편씩 쓸 예정이다. 그 중에는 성공한 미용인도 있을 것이고 동네에서 나 홀로 미용실을 운영하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기자에겐 모두 소중하고 고귀한 미용인 자산이다. 그분들과 함께한 생활이 기자에겐 기쁨이고 행복이다. 우리는 미용으로 엮어진 떼려야 뗄 수 없는 미용가족이니까. 이완근(본지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alps0202@hanmail.net

 

환하게 빛나는 미용의 선구자

-홍도화 박사

 

불모지의 땅에서 길을 내는 사람은

개척자이며 선구자에 다름 아니지

척박한 미용의 땅에

퇴비를 뿌리며 물을 주듯

미용시장을 풍부하게 만들어가는 것

진정으로 미용을 사랑하는 사람만 가능하지

꿈을 실현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최선을 다한 삶

학교를 세우고

최초의 미용학 박사가 되고

미용장협회 회장을 하고

후배들을 가르쳤지

명화 꽃 야생화 고전머리 재현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일은 마다하지 않았지

더불어 삶을 풍성하게 할

언어도 가다듬어

마음까지 살찌우고 있지

다시 태어나도 미용,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몸을 다 바쳐

미용의 길을 활짝 열어젖히리

우리의 미용

환하게 빛나리 하리


단아한 모습과 애정이 담긴 연설에 매료

사람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새로운 세상과 알게 되는 것이라는 말을 기자는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관계 맺음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쉽게 여기지 않습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친한 관계를 맺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선뜩 나서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성격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기자는 홍도화 박사를 미용계 행사에서 몇 번 뵌 적이 있습니다. 홍도화 박사에 대한 단편적인 이야기들만 주위에서 듣고 있었습니다. 모습을 뵐 때마다 단아한 모습과 지적인 자태를 지녔다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몇 년 전, 한국미용장협회 행사가 대전에서 있었습니다. 어수연 회장이 재임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행사에 참석한 기자는 내빈석에 앉아 행사의 진행을 눈여겨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내빈석에 앉아 있던 홍도화 박사께서 축사를 하는 차례가 되었습니다. 전 회장으로서의 축사였습니다. 축사를 듣던 기자는 깜짝 놀랐습니다. 일목요연한 연설내용뿐만 아니라 후배 미용장들에게 전하는 연설에서 미용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차분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연설이 고결한 모습과 더불어 멋진 하모니를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기자는 감탄하며 축사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연설이 끝났을 때 기자도 모르게 힘찬 박수를 치고 있었습니다. 내성적인 기자였지만 축사를 마치고 기자 옆자리에 앉은 홍도화 박사께 정식으로 인사를 드렸습니다.

홍도화 박사도 무척 반기셨습니다. 우리는 많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미용에 대한 몇 가지 얘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기자는 홍도화 박사와 정식으로 인연을 맺었습니다.

이후에도 한국미용장협회는 대전에서 연례행사처럼 송년회, 체육대회 등을 열었고 그때마다 우리는 조우할 수 있었습니다. 시집을 받기도 했습니다. 시인으로 등단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친필 사인 시집을 직접 받으니 기쁨이 더했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은연중에 동료의식을 느끼는 법입니다. 같은 시인이니 더 반가울 수밖에 없었지요.

홍도화 박사는 정이 무척 많고 후배 사랑도 남달랐습니다. 기자에게 괜찮은 미용인이 있으면 소개하기에 바빴습니다. 이 후배는 작품을 잘하니 잡지에 작품을 실으면 좋겠다고 소개했고, 어떤 후배는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있으니 인터뷰를 해달라고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기자는 후배를 사랑하고 아끼는 그 마음을 잘 알기에 흔쾌히 응했습니다.

 

아침은 건너뛰고, 점심은 굶고...

홍도화 박사는 어려서부터 멋내는 일을 좋아했고, 그 일들이 좋아서 미용전문가가 되겠다는 꿈을 열 살 때부터 가지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오고 가는 등, 하교 길에서 아카시아 상순을 꺾어 거기서 나오는 진액을 친구들에게 발라주기도 하고 아카시아 줄기를 따서 그 잎을 다 따내고 머리카락에 물을 발라서 가는 줄기에 감아두었다가 풀면 꼬불꼬불해지는 신기한 웨이브를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가난 때문에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해야 했고, 교복 입고 머리를 땋아 양쪽으로 내리고 등교하는 친구들을 보며 몰래 숨어서 울기도 했습니다. 형편이 어려우니 동생들 뒷바라지도 해야 하니까 기술도 배우고 돈도 벌어야 했기에 이모가 운영하시는 미용실에 취업했습니다.

그때 우리나라 미용실 환경은 아주 열악하였고 기술을 배우는 일은 어깨너머로 더듬더듬 배웠습니다. 하루에 몇 번씩 울어야 했고 아침은 건너뛰고, 점심은 굶고 저녁 한 끼로 식사를 하는 일의 반복이었습니다. 그렇게 힘들고 어려웠지만 󰡒젊어 고생은 돈 주고 사서도 한다.󰡓라는 각오로 인내심을 키우며 열심히 일하고 연구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항상 목표를 세워놓고 꿈을 키우며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살았습니다.

경기도청에서 실시하는 미용사 면허증 시험에 합격하고 1974년 청주 사직동에 미용실을 오픈하였습니다. 1983년 청주 성안 길에 호산나 미용실을 오픈하였습니다. 기술에 대한 갈증을 견딜 수가 없어서 여기저기 공부할 수 있는 곳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1980년대부터 일본으로 미용을 공부하러 가기 시작했고, 1984년 동아미용기술학교 커트 단기과정을 수료하며 강사 인정증서를 받으며 기술교육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이후 미국 비달사순도 호주 피봇포인트도 가서 단기과정 교육을 받기도 하며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학교 공부에 한이 많은 홍도화 박사는 1988년에 고등학교 졸업을 하고 충청대학교 미용과에 입학하여 1999년에 졸업을 하였습니다. 우리나라 대학에 미용학 석사가 처음으로 생기던 2002년 한남대학교 대학원 석사과정에 입학하여 2004년 향장 미용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학위를 받고 직업진로는 중학교 때부터 정해져야 한다는 생각에 미용고등학교를 설립해야겠다는 꿈을 키우며 박사학위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미용학 박사학위 취득

미용예술학 박사학위도 없던 때였는데 서경대학교에서 처음으로 개설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서경대학교 미용예술학과 박사과정에 입학하여 2008년 2월 대한민국 첫 번째 미용예술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남 주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홍도화 박사는 열심히 배우고 가르쳤습니다. 학원 교육, 직업학교교육, 그리고 대학, 대학원 교육에 만전을 다했습니다.

불철주야 노력 끝에 1993년 우리나라 최초의 미용장도 되었습니다. 1995년 미용기능장 중앙회가 설립되었고 홍도화 박사는 2005년 6대 7대 중앙회장으로 일하였습니다. 협회를 사단법인(고용노동부, 2008.4.3. 등기필)으로 인가를 받고 ‘사단법인 한국미용장협회’로 명칭을 개정하고 해외연수, 미용교육을 위한 미용장 개론, 실기 교재 편찬을 하고 소식지 창간호를 발행하기도 했습니다. 미용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어려웠지만 버는 것의 십분의 일은 교육에 투자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일찍부터 외국기술을 배워왔으며 한국과 태국 등에 다니며 미용기술 대중화 보급 및 학문의 체계적인 교육의 정립을 위하여 미용의 역사를 찾아 재현하는 전시회 주관 및 작품출품과 미용작품 쇼 및 퍼포먼스 등을 실시하기도 하였습니다.

홍도화 박사는 재능을 살려 미용계 도서 출간은 물론 지금까지 시집 세 권을 내기도했습니다. 양로원, 노숙자 시설, 요양원, 호스피스 병동 등을 찾아 미용봉사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자원봉사 활동도 꾸준히 하고 있는 것은 물론입니다.

미용 사랑은 기본이고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똘똘 뭉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미용인들이 존경하고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미용 일을 할 것이라는 홍도화 박사, 미용선배들이 경험을 바탕으로 좀 더 세심하게 후배들을 가르쳐주면 좋겠다는 홍도화 박사, 인공지능이 해내기 어려운 미용 예술의 장르를 확실하게 발전시켜 그 입지가 반석 위에 세워지길 기대한다는 홍도화 박사, 미용용어 사전도 만들어지고 통일이 되면 후학들이 찾아보며 배울 수 있도록 미용사가 정립되면 좋겠다는 홍도화 박사는 분명 우리 미용계의 보배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홍도화 박사 프로필

* 미용예술학 박사학위 취득(서경대학교 2008년)

* 사)한국미용장협회 중앙회 6~7대 회장(역임)

* 학력인정 예일미용고등학교 설립

* 『Varform up style』 업스타일교재 발간 / 1996년 5월 / 유신문화사

* 산문집/ 『세상을 여는 나의 미용 인생 1.2.3집』

* 시집/ 『끼』 『이대로 사랑할 수 없을까』 『발이 빚는 바람』

* 2006.10.~ 2012년 12.까지 고전머리재현 자연과 예술 등 개인 전시 8회

* 2014년~ 2022년 8월까지 발을 빚다 국내, 해외전시

* 2009년 제14회 소사벌 미술대전 머리카락으로 피운 무궁화꽃/ 최우수상

* 2003년 10월 28일 국무총리 표창

* 2010년 10월 28일 국민포장 대통령 이명박/ 행정안전부장관 맹형구

* 2022년 3월 24일 제6회 충북봉사대상 수상


<뷰티라이프> 2025년 7월호, 창간 26주년 기념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