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138)
빈방에 부는 바람
연명지(1960~ )
엄마는 새끼들 손가락에서 피가 나면
갑오징어 뼈를 갈아 상처를 덮어주었다.
늘그막의 엄마는 온통 압통점이어서
생의 눈꺼풀 위 묵직한 바위 하나 올려놓았다.
당신의 뼈 아래에서 놀던 우리를 남겨두고
마지막으로 잡았던 손들
하나도 데려가지 않고 혼자 갔다.
무언가 두고 갈 것이 있다는 걸
기뻐하라는 글을 남긴 어떤 이는
새의 눈물을 흘렸고
어미 앞에 죄인인 새끼들은 눈물을 꾹꾹 숨겼다.
누구도 눈물을 찾지 못하도록
바삐 숨겼다
누군가를 가슴에 묻어본 사람들은
눈물을 열고 잠그는 방법을 안다.
잘 울어야 한다는 교리가 있는 것도 아닌데
처음 본 입술은 깔깔 울었다.
엄마의 흔적은 사흘 만에
바람으로 불려갔고
살아서는 방에만 있던 엄마는
이팝나무 가지에, 바람 속에 숨어 있다.
새끼들 손가락에 피가 나면
얼른 오징어 뼈를 들고 나타날 것만 같은
엄마는, 죽어서도 엄마
그 엄마라는 말로 여전히 우리를 다독인다.
연명지 시인
충북 괴산 출신이다. 2013년 시집 <가시비>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2014년 <시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사과처럼 앉아 있어>가 있다.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138번째 시는 연명지 시인의 “빈방에 부는 바람”입니다.
하느님이 모두를 돌볼 수 없어서 보낸 게 ‘엄마’라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그 어떤 것보다도 위대하고 숭고하다는 말도 인정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터.
고등학교 때입니다. 1학년 동안은 학교 기숙사 생활을 했고, 기숙사의 고리타분하고 질서정연한 생활에 질려 2학년부터는 교외생을 했습니다. 교외생이란 기숙사에서 머물지 않고, 근처에 집이 있어서 자기집에서 학교를 다니거나, 학교 근처에서 하숙이나 자취를 하는 학생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어느 날, 토요일 저녁이었습니다. 갑자기 오른쪽 가운뎃손가락이 무진장 아파왔습니다.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생인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생인손은 상처 하나 없이 손가락이 아픈 병입니다. 생인손을 앓아보지 않고는 그 고통을 논할 수 없습니다. 하룻밤을 앓고 있는데 아침이 밝기도 전에 시골 어머니께서 자취방을 갑자기 방문하셨습니다. 어젯밤 꿈자리가 뒤숭숭해서 아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 싶어서 방문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정성으로 일요일 오후에 생인손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깨끗이 나았습니다.
어머니의 일요일 새벽의 방문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때의 감격은 평생 가고도 남을 것 같습니다.
이렇듯 “엄마는 새끼들 손가락에서 피가 나면/ 갑오징어 뼈를 갈아 상처를 덮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벌에 쏘일라치면 된장을 발라주었습니다. 배가 아프면 손으로 배를 살살 문질러 주기도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면 신기하게도 씻은 듯이 나았습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은 마법사인 듯합니다.
그런 어머니들도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혼자” 저 세상으로 가십니다. “이팝나무 가지에, 바람 속에 숨어 있”을 뿐입니다. “새끼들 손가락에 피가 나면” “오징어 뼈를 들고 나타날 것만 같은” 우리들의 “엄마는, 죽어서도 엄마”입니다.
어머니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껴보는 시, “빈방에 부는 바람”이었습니다.
【이완근(시인, 본지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뷰티라이프> 2025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