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139)
물의 칼
임보(1940~ )
대장간의 화덕에서 벼린 굳은 쇠붙이만이
예리한 칼이 되는 것이 아니다
물로 가슴을 베인 적이 없는가?
해협을 향해 몰아치는
거대한 파도의 모서리가 아니라
몇 방울의 물
두 안구를 적시며 흐르는
가는 눈물방울도
사람의 가슴을 베는 칼이 된다
임보 시인
전남 순천 출생. 1962년 서울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1962년《현대문학》등단. 시집 『임보의 시들 〈59-74〉』, 『산방동동山房動動』『목마일기』, 『은수달 사냥』, 『황소의 뿔』, 『날아가는 은빛 연못』, 『겨울, 하늘소의 춤』, 『구름 위의 다락마을』, 『운주천불』, 『사슴의 머리에 뿔은 왜 달았는가』, 『자연학교』,『장닭설법』, 『가시연꽃』, 『눈부신 귀향』, 『아내의 전성시대』, 『자운영꽃밭』, 『검은등뻐꾸기의 울음』, 『광화문 비각 앞에서 사람 기다리기』, 『산상문답』, 『벽오동 심은 까닭』, 『사람이 없다』, 『수수꽃다리』, 『청산무』, 『짚신과 장독 』 시조집에 『청산도 유수로 두고』 등 출간. 시선집 『지상의 하루』, 『그런 사람을 어떻게 얻지?』, 시론집 『한국현대시 운율 구조론』, 『엄살의 시학』, 『미지의 한 젊은 시인에게』, 『시와 시인을 위하여』, 『좋은 시 깊이 읽기』 등. 〈상화시인상〉, 〈성균문학 대상〉, 〈시와 시학작품상〉, 〈윤동주문학상〉, 〈다형문학상〉, 〈녹색문학상〉, 〈문덕수문학상〉 등 수상. 충북대학교 인문대학 국문과 교수 역임.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139번째 시는 임보 시인의 “물의 칼”입니다.
다사다난했던 갑진년이 저물고 을사년 새해가 밝은 지도 한 달이 다 되어 지나가고 있습니다. 남의 가슴에 못 박으면서까지 살지는 말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사는 게 인지상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살다 보니 “예리한 칼”은 아닐지언정 “가슴을 베인 적이” 많지는 않았지만 있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못합니다. 믿었던 후배에게 저당잡았던 믿음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거나, 돈 앞에서 의리도 신뢰도 초개같이 버리는 인간관계를 보면서 인간에 대한 회의가 들기도 합니다. 문제는 그들이 반성은커녕 가면 뒤에 숨어서 자기 합리화에 급급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이러한 행태는 인간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기본적으로 지켜야 하는 믿음과 신뢰에 대한 공든 탑을 무너뜨리면서 인간관계를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을 죽인 살인자보다 다수의 사람을 속여 많은 사람들의 생활을 황폐하게 하는 사기꾼이 더 나쁜 사람이라는 말은 깊게 생각해야 할 명제입니다.
을사년인 올해는 ‘을사년스러운’ 해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예리한 칼”은 물론이거니와 “물로 가슴을 베”이는 일도 없어야겠습니다. 그러려면 나와 이웃에 대해 아낌없는 사랑과 배려가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가면을 벗고 겨울나무처럼 홀딱 벗어던지는 용기가 절실해 보입니다.
“물”이 “칼”이 아니라 물의 속성인, 아래로 흐르고 사랑의 목넘김이 되기를 욕심내어 빌어 봅니다.
【이완근(시인, 본지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뷰티라이프> 2025년 2월호